Paradise Lost AU

 

※파라로스 스포가 포함 돼있으니 열람시 주의해주세요.

 
 
 

 


 
칼리고 (짙은 안개, 구름, 어두움, 희미함)
생기 없는 두 눈동자에는 올리브 빛에 어울리지 않는, 지옥에 떠 있다고 하는 붉은 달이 동공 대신 새겨져 있어 불길하게 느껴진다. 핏기 없는 창백한 피부, 마른 입술과 퀭한 눈이 안쓰러움을 불러일으킨다. 관리하지 못해 부스스한 머리에 머리띠를 매고 있는데 누군가 잘 보이고 싶은 이라도 있는 걸까?
 
 


 

 칼리고는 천사도 악마도 아닌 평범한 작은 마을의 소녀인데 어느 날 운 나쁘게 천사와 악마의 싸움에 말려들어 버린다. 
죽을 뻔한 칼리고를 라파엘이 치유해줬지만, 악마에게 걸린 저주가 칼리고의 몸에 남게 되어 점점 쇠약해져만 간다. 그에 라파엘은 천계의 싸움에 휘말려 저주에 걸린 칼리고에게 연민과 책임감을 느껴 매일 칼리고를 찾아와 기력을 불어넣어 주고, 그 대신 자신은 고통받는다. 
 

 

 


 

 

 칼리고는 라파엘이 왜 이렇게까지 해주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은 고작 저주에 죽어가는, 보잘것없는 인간 한 명일 뿐이니까. 혹시 내가 라파엘에게 특별한 존재인 건 아닐까? 헛된 생각을 감히 품게 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실은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라파엘은 치유밖에 할 수 없으니까 구할 수 있는 생명은 다 구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천사로서의 사명을 다하고 있을 뿐이라는 걸. 아무리 무지한 인간 소녀라 해도 그 사실을 어찌 모를까? 
그럼에도 라파엘의 입에서 소리내어 그의, 천사로서의 사명을 들었을 때, 어리석고 나약한 칼리고는 상처받을 수밖에 없었다.
 
" 저는 라파엘 님의 아기새가 아닙니다. 당신이 사랑스럽다는 듯이 보는 것이 저에게는 기만이고, 저를 더 비참하게 해요. 어차피 긴 세월을 사는 천사에게 인간의 인생은 한순간이지 않나요? 저는 더 이상 라파엘 님이 고통스러워하는 것도 보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 더이상 제게 상관하지 말아 주시고, 그 사명. 이런 꺼져가는 목숨이 아니라 더 의미 있는 곳에서 다 하시길 바랍니다."
 
 깨달았을 때는 이미 화를 내며 모든 것을 내뱉고 있었다. 저주에 걸린 뒤 힘없고 고통스럽지만 견뎌 왔던 하루하루가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가엾은 칼리고 무엇을 동경했는가. 말라비틀어진 나무에 무슨 짓을 한들 되살아나 열매를 맺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저주를 받은 그 날부터 자신의 모든 것이 헛된 것이었다. 눈앞의 천사조차도.



 


 
 
 
 
 

 처음 소녀의 붉은 동공을 보았을 때 라파엘은 놀라 숨 쉬는 법을 잠시 잊었다. 과거 한때는 같은 길을 거닐며 사랑해야 할 세상에 꺼지지 않는 등불이 되어 신의 뜻을 전하던, 그러나 자신이 상처 입힌, 자신의 신념을 따르겠다며 뜻을 달리한 동료들. 그들이 도달한 곳. 빛 한점 닿지 않는 어둠의 저편에 지는 일 없이 언제 어느 때나 홀로 고고히 떠 있다고 하는 검붉은 달. 저주받은 가엾은 소녀의 동공은 그것을 닮아있었다.
 자연히 슬펐던 그 날의 싸움이 떠올랐다. 아무리 구하려 손을 뻗어도 닿지 않았던, 너무나 구하고 싶었던 동료들. 그들에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기에 무슨 말을 했다고 한들 라파엘의 말이 닿는 일은 없었다. 분명 불가능한 소망이었으나, 그럼에도 그 당시의 기억은, 분노에 찬 아자젤의 고함소리는, 라파엘의 몸속 깊은 곳에 후회로 남아있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가만히 방치하면 곧 꺼져갈 목숨인 이 소녀를 구하고 싶다고, 이 소녀의 등불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고요한 어둠이 가고 신의 가호가 내리듯 찬란하게 빛이 내리쬐는 시간. 그 거룩함에 가슴 깊이 감동하여 황홀히 바라보고 있으면, 잠시 후 사랑스러운 새들이 노래하며 하루의 시작을 널리 알린다. 그때가 소녀의 곁으로 라파엘이 찾아오는 시간이었다. 
 라파엘은 하루도 빼놓는 일 없이 소녀를 찾았다. (쓰는 중 대충 사실은 매우 바쁜 라파엘이지만 이 시간이 아깝다 생각해 본 적은 없고, 되려 자신을 걱정하는 칼리고가 사랑스러움)
 
"라파엘님은 저 말고도 매번 치유할 때마다 그렇게 고통스러워하시나요?" 
 
 치유를 마친 뒤, 이제 막 괴로움을 잠재운 라파엘에게 기다렸다는 듯이 칼리고가 질문을 던졌다. 아마 줄곧 궁금했으나 눈치가 보여 고민만 하다가 겨우 오늘 물어본 것이겠지. 질문하는 이때에도 걱정스레 눈을 굴리는 모습이, 조심스레 풀밭을 살피는 토끼와 같이 귀여웠다.
 
"그렇다. 하지만 아주 작은 인내가 필요할 뿐이니 아무런 문제는 없어."
 
"네? 그치만 라파엘 님은 치유하는 것이 일이라고 하셨잖아요. 그럼 분명 무척이나 많은 사람을 구하는 일일텐데, 그때마다 매번 고통을 느낀다니… 그건 너무 힘들 것 같아요. "
 
"… 신께서는 무언가 나로서는 종잡을 수조차 없는 생각이 있으셨겠지. 나는 이 능력에 마음 깊이 감사하고, 사랑하고 있어."
 
"하지만 그런 건 이상해요. 사람을 구하는 것을 임무로 내려놓고 희생을 강요하다니, 신께서는 사람들에게 감사받는 라파엘 님을 질투라도 하시는 건가요?"
 
 가볍게 입을 떼려다 과거 아자젤과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는 걸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하마터면 그때와 똑같은 대답을 들려줄 뻔한 것이다. 라파엘이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못하고 있으니 칼리고는 자신이 말실수했다 생각한 듯하다. 
 
"라파엘 님... 죄송합니다. 라파엘 님은 신의 사도신데 제가 감히 생각 없이 신을 욕보이는 듯한 말을 해서. 다시는 그런 일 없도록 조심할 테니까 노여워 마세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칼리고는 아무 잘못이 없었다. 잘못한 건 과거 친우를 상처입힌 말을 다시금 입에 담으려 했던 자신이었다. 물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또다시 상처입혀서는 안 됐다. 저의 능력으로는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순 없으니까. 그럼에도 라파엘은 괜찮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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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고한테 쫓겨난 라파엘(천계에서 자꾸 인간계만 바라보는 라파엘에게 우리엘이 다가옴)
 
 죽어가는 칼리고를 보는 것이 견딜수 없이 괴로워진 라파엘이 약속을 어기며 칼리고를 치유하고 고통스러워함 (칼리고 머리띠 쓰고 있음)
"[ 나는 과거 갈라져 버린 친우에게 자신의 상처는 돌아보지 않는다 말했다. 하지만 그대가 아파하는 것을 봤을 때, 나의 마음은 깊이 상처 입어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이 아픔은 누군가를 치유할 때 느끼는 고통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고통스러워. 그대를 이대로 죽게 내버려 둔다면 분명 내 마음은 상처입어 부서지겠지. 그러니 이 고통을 지우려 그대를 치유하는 나를 부디 용서해주길 바라. 그대를 치유하면서 내가 자신을 돌아보는 걸 부디 허락해 줬으면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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